올 시즌 초 수원 삼성의 행보는 그야말로 돌풍과도 같았다. 지난 시즌 악몽 같았던 전반기를 지나 박건하 감독 체제에서의 후반기 성과가 매우 뛰어났던 수원 삼성이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예상 가능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충분한 수준의 전력 보강 없이 그전까지 고전을 면치 못했던 FC 서울, 전북 현대를 내리 잡으며 우승 경쟁권의 한 축으로 당당히 자리하는 수준까지 내다본 사람은 극히 적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런 수원 삼성의 성과에는 전반기 K리그를 뜨겁게 달군 매탄고등학교(수원 삼성 유스팀) 출신 선수들, 이른바 '매탄소년단'으로 이름을 알린 어린 선수들의 활약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난 시즌 데뷔해 ACL에서 요코하마 F 마리노스를 무너뜨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오른쪽 윙백 김태환, 중앙 미드필더로서 빠른 프로 무대 적응력을 보여준 강현묵, 그리고 매탄소년단의 활약상에 화룡점정을 찍은 정상빈이 그 주인공이었다. 여기에 더해 매탄고 출신으로 뒤늦게 잠재성을 터뜨리기 시작한 김건희, 흔들림 없는 수비진으로 탈바꿈한 민상기 중심의 3백 선수진,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주던 김민우, 한석종, 이기제, 고승범 등 선수들 대다수가 뛰어난 경기력으로 수원 삼성을 이끌었다. 박건하 감독과 이경수 수석코치가 고안한 전술 시스템에서 이 선수들 모두가 조화를 이루었고, 조직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끝내 패배하는 경기도 있었지만, 2-3으로 기어코 역전하는데 성공했던 제주 유나이티드전이나 지긋지긋한 징크스를 떨쳐내는데 성공했던 전북 현대, FC 서울과의 경기에서의 승리를 통해 선수들이 지닌 강인한 멘탈리티 역시 확인할 수 있었던 전반기였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팬들은 오래간만에 나타나기 시작한 강팀 수원 삼성으로서의 면모를 환영했고, 팀에 대한 아낌없는 지지와 기대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상대를 두렵게 했던 돌풍은 시원한 산들바람으로 변모했다. 올림픽이 끝난 뒤 치른 첫 경기. 수원 FC와의 수원 더비에서 한석종의 오심에 의한 퇴장이 불러온 아쉬운 역전패로 불안한 스타트를 끊더니, 이어 치른 리그, FA 컵 경기에서 계속 승리를 챙기지 못하면서 완전히 침체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현재까지 후반기 전적은 1무 5패. 전반기의 성적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매우 절망적인 성적이다. FC 서울, 강원 FC의 무승행진을 담습하기라도 하듯 계속해서 하향세를 그리고 있는 수원인데, 당초 기대되던 우승경쟁은 커녕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조차 위기인 상황이다.
그간 전반기의 성과를 바탕에 두고 박건하 감독 및 코치진과 선수들을 지지해 왔던 팬들 역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경기에서는 선수들의 움직임, 조직력 모두 좋지 않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 이어진다면 최근 몇 시즌 중에서 가장 치열한 순위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번 시즌의 상태를 생각해봤을 때 강등권까지 추락하는 것도 우려할 만 하다. K리그를 지배했던 강팀의 모습을 다시금 부활시키는듯 했던 이들, 수원 삼성에게는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일까.
# 얇은 스쿼드, 가중된 주전 선수들의 부담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스쿼드 뎁스가 얇다는 점이다. 주전 선수들의 시즌 초 경기력, 조직력, 개인 기량 자체만 두고 보면 수원 삼성의 전력은 굉장히 높이 평가될 만 하다. 전북 현대, FC 서울과 같은 까다로운 상대에게 패배하기도 했지만, 시즌 중반기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이들을 각각 3-1, 3-0으로 완파하며 좋은 선수진을 갖춘 강팀에게도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바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수원 삼성의 주전조는 충분히 고평가를 받을 만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플랜이 중요한 '리그'에서는 스쿼드 뎁스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수원 삼성에 대해 이야기되던 부분이기도 하지만, AFC 챔피언스리그와 같은 단기 토너먼트 대회에서는 주전 선수들의 컨디션이 잘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지만 장기적인 경쟁이 필요한 리그 경기에서는 체력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측면을 고려할 때 주전 선수들의 체력 부담을 덜어준 로테이션 자원들의 중요성이 리그에서 더 부각되고, 또 그런 선수들을 이용한 적절한 로테이션의 중요성 역시 강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수원 삼성이 좋은 성적을 올리던 이번 시즌 초기부터 지적되던 문제가 바로 그 '스쿼드 뎁스', '로테이션 가능성'이라는 부분이었다. 주전 선수들의 기량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로테이션으로 주전 선수들을 보좌해줄 선수들 대다수가 전력 외 판정을 받았거나, 믿음직스럽지 못한 선수거나, 너무 어린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지금 시점에 이르러서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이것이 경기력과 성적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 셈이다. 올림픽 휴식기를 거쳤다고는 하지만, 다른 팀에 비해서도 주전 선수들의 출전빈도가 적지 않았던 수원 삼성이었기 때문에 그 문제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휴식기간 동안 준비가 부실했던 것처럼 보이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주전 선수들의 체력 부담 심화와 그에 따른 움직임의 둔화다. 전술의 코어 역할을 해줘야 할 선수들이 체력적인 문제로 해줘야 할 플레이를 하지 못하고, 제 기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다 보니 전체적인 경기력 또한 악화됐다는 이야기다. 한 선수의 느려진 움직임이 다른 선수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이는 또 다른 선수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배로 미친다. 더군다나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다른 팀들을 공략해왔던 수원 삼성이었기에 선수들의 컨디션 난조는 치명적이었다.
# 전방 공격진에서의 문제
수원 삼성의 공격진에서 나오는 문제 역시 수원의 부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격진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한다면 다음 두 가지를 뽑을 수 있다. 우선 앞선에 나서는 선수들의 단점으로 인한 전술적인 문제다. 수원 삼성의 경우 공격수들이 상대에게 진행하는 압박의 퀄리티가 우수한 편이었다. 상대 수비수들의 빌드업 전개를 방해하고, 적절한 위치선정으로 중원싸움을 지원하는 수원 공격수들의 플레이는 수원 삼성이 뛰어난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중 하나였다. 이런 경기운영을 유지함으로써 수원 삼성은 좋은 경기력은 물론 결과까지 챙겨갈 수 있었다. 실제로 수원은 정상빈의 교체 이후 들어온 니콜라오가 전방에서의 수비를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던, FC 서울과의 첫 번째 경기에서 패배했다. 전반기에는 이러한 공격진영 수비에서의 결점이 선수들의 노력으로 커버되어 왔지만, 주전 선수들의 체력적 부담이 심화된 후반기에는 적극적인 전방수비가 어려워지게 되면서 팀의 전체적인 전술기조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비단 체력부담, 수비력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수원 삼성의 투톱 자리에 나서는 선수들 개인기량의 문제가 이같은 문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전반기에도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히던 부분이다. 김건희와 정상빈, 이 두 선수들의 출전이 가능한 상황에서는 두 선수들의 조화, 헌신적인 플레이, 수비적 강점이 잘 발휘될 수 있었지만, 김건희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서는 유주안, 제리치, 니콜라오. 이 세 명의 벤치자원들이 선발출전하게 될 경우에는 김건희와 정상빈 만큼의 호흡, 수비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약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유주안은 특유의 적극성과 투쟁심 등 멘탈리티적인 면에서는 훌륭하지만, 데뷔 시즌 이후 계속해서 악화일로를 겪고 있는 빈약한 공격력이 발목을 잡는다. 제리치는 약간의 득점력을 겸비했고 연계, 공중볼 다툼과 같이 공격적인 부분에서는 기대해볼 만한 여지가 있지만, 느린 스피드에서 나오는 전방 수비력의 부족이 김건희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에는 공격력조차 기대치에 미치기는 커녕 아무런 장점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주전경쟁에서 밀린 모양새다. 마지막 니콜라오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준수한 선수라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아직 K리그 무대에 적응하지 못한 모습이다. 전반기에 문제를 드러냈던 수비적인 부분의 약점은 아직 부족하긴 해도 약간이나마 개선된 것으로 보이나, 팀원과의 호흡 문제, 부족한 경기력이 치명적이다. BQ(축구지능)가 좋지 않다는 것 또한 문제점이다. 공격적인 센스와 괜찮은 피지컬을 보유한 선수이기에 아직 긁어볼 만한 자원이지만 현재의 부진을 타파할 만한 카드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처럼 정상빈과 김건희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이 기량 면에서 부족함을 보이고 있다는 것 또한 공격진에서 나오는 문제인 셈이다. 또 K리그가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에 따라 성적이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외국인 선수들의 부족한 기량이 더더욱 아쉬울 뿐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정상빈조차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공격진에서의 문제가 더 심해지고 있다.
# 고승범의 이탈
얇은 스쿼드 문제와 더불어 수원 삼성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고승범이 수원 삼성에서 지녔던 영향력은 짧은 몇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투쟁심, 적극성, 헌신. 멘탈적인 면에서는 어려운 기간을 이겨내고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선 선수인생 덕인지 흠잡을 부분이 없다. 그렇다고 멘탈리티만 뛰어난 선수냐고 묻는다면 당연하게도 아니다.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폭넓은 활동범위, 준수한 드리블 실력, 간결한 플레이, 이따금 보여주는 위협적인 중거리 슈팅까지 보유한 고승범은 K리그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이같은 고승범의 장점은 팀원들과의 호흡, 조직적인 움직임 속에서 더 두각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 본다면 오히려 고승범의 존재로 다른 선수들의 장점이 부각되는 측면이 강했다. 고승범의 존재로 수원 삼성은 공격시에는 중원을 수월하게 장악할 수 있었고, 수비시에는 역습을 쉽게 방어해낼 수 있었다. 공수 연결고리이자 중원의 '핵'이었던 고승범의 존재감은 실로 대단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런 고승범이었기에 고승범의 이탈이 가져온 파급력 역시 매우 거대했다. 군복무 문제로 상무에 임대이적한 고승범의 부재는 권창훈의 합류로도 수원 삼성이 메꿀 수 없었다. 상술한 체력적 문제로 주전 선수들의 부담이 더해진 상황에서, 넓은 활동범위로 동료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보다 많은 역할을 수행했던 고승범이 빠진 자리는 구멍 그 이상의 것이었다. 안 그래도 부담이 심해진 상태의 수원 선수들은 고승범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더 많이 뛰어야만 했다. 여러 원인으로 인한 체력적 문제. 고승범의 이탈이 방점을 찍으면서 수원의 강점은 약점으로 변했다. 상대 선수들보다 더 많이 뜀으로써 주도권, 분위기를 가져오는 경기스타일, 끊임 없는 오프 더 볼 움직임, 동적인 플레이로 구사하는 조직적인 공격전개가 모두 선수들을 지치게 만드는 악재로 바뀌어 버렸던 것이다.
# 어린 선수들의 경험부족
올 시즌 수원의 스쿼드에는 어린 매탄고 출신 선수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정상빈, 김태환, 강현묵, 박대원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모두가 수원 삼성의 주전 선수거나 핵심적인 에이스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기에 꾸준히 출전하는 축에 속하는 선수들이고 꽤 많은 출전 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이 어린 선수들인데, 전반기 베테랑 선수들보다도 뛰어난 활약으로 놀라움을 선사하긴 했지만 어린 선수들에게 나타나는 경험부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단순히 경기운영, 플레이에서 경험부족이 드러난다는 말이 아니다. 장기 레이스인 리그를 처음 경험하는 이 어린 선수들에게는 리그의 긴 일정에 따르는 체력적 부담이 상당했을 것이라는 논지의 이야기다. 특히 정상빈, 김태환의 경우 수원 삼성의 전술에 있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선수인데, 체력부담을 떠앉게 된 정상빈과 김태환이 역할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서 수원 삼성의 전술적 문제가 더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정상빈, 김태환과 같은 핵심 주전선수는 아니지만, 나름 꾸준한 출전시간을 기록중이던 강현묵과 박대원 역시 과부하가 온 탓인지 이전부터 지적받던 경기중 집중력 부족 문제가 더 자주 발생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 모든 이유로 나타난 결과가 지금 수원 삼성의 상황이다. 요약하자면 고승범의 이탈, 공격진의 기량 부족, 얇은 스쿼드 뎁스와 여름 날씨로 인한 주전 부담 심화, 어린 선수들의 체력 적응문제 등으로 수원 선수들의 전체적인 경기력 저하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수원이 자랑하던 양 측면 공격, 윙백 자원 선수들의 경기 영향력은 미미하게 변했고, 빠른 판단과 정확한 패스로 방향전환, 빌드업을 주도하던 센터백 선수들과 플레이메이커 한석종의 전개 능력은 실종됐다. 빠르고 간결한 템포의 공격 방식은 매번 패스 미스로 중도에 차단되기 일쑤다. 전방에서는 정상빈이 고립되는 경우가 늘어났고, 중원 장악 능력도 사라졌다. 수비진과 골키퍼의 실수 빈도도 늘어났다.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만큼, 박건하 감독으로서는 수원 삼성 감독직을 맡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상당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부진과 어려움 속에서도 쉽사리 경질을 얘기하고, 선수들에 대한 비난을 늘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그들의 실책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장기 레이스를 처음 경험한 감독과 대다수의 신인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수원 삼성이기에 지금 같은 문제는 어느 정도 염두해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AFC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시즌 전반기에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것을 마냥 우연이라고만 말할 수도 없는 일이고, 미래지향적인 관점으로 지금과 같은 문제를 그들이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기다려준다면, 지난 몇 달 간의 호성적을 다시금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 현 수원 삼성의 잠재력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선수들의 나태함, 신인 선수들의 자만심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도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그런 이야기들은 성적이 좋지 않은 팀들에게서 나오는 흔한 루머에 불과하다. 올 시즌은 그저 얇은 스쿼드와 시즌 전 우려됐던 몇 가지 문제들이 예상대로 발생한 것일 뿐이다. 향후 수원 삼성이 어떤 행보를 걸어나가느냐에 따라 박건하 감독 및 코치진, 그리고 선수들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경질이나 막연한 비난, 방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섣부르다. K리그1에서 첫 풀 리그를 치르는 감독, 그리고 선수들에게 다가온 시련이 수월하게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이번 포스트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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