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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cio Rivista] #1 - 페르세폴리스, 에스테그랄, 그리고 테헤란 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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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소개

 <Calcio Rivista>는 '축구 그 이상을 담는' 것을 모토로 개제되는 축구 칼럼 시리즈이다. 여기서는 전술 또는 선수 분석과 같은 축구 내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축구 외적인 요소. 즉 문화와 사회적 요소들을 본 연재글에서 소개함으로써 축구 팬들이 보다 많은, 그리고 더 깊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독자 여러분들은 본 칼럼 시리즈를 통해 축구 그 자체의 풍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시에 축구가 놀랄 만큼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축구 그 이상의 가치'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작성일자 : 2020년

 

열정적인 이란 축구 팬들, @AS english

 이란인들에게 축구는 특별하다. 호메이니 집권 시절 정통 이슬람주의자였던 호메이니가 축구를 금지시키려 했을 때 호메이니측 인사 대부분이 이를 반대했을 정도로 축구에 대한 열정이 높은 이란 사람들이다. 오늘날에도 농구와 더불어 이란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이고, 어쩌면 농구 이상의 인기를 보유한 국기 스포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란 내 축구 인기는 자국 리그에 대한 열정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란 프로 축구 리그인 페르시안 걸프 프로 리그는 2001년 창립되어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데, 8천~9천 명대의 높은 평균 관중 수가 그 인기를 보여준다. 여타 중동 지역 프로 리그와 비교했을 때도 매우 높은 수치의 관중 수인데, 1970년 즈음 전성기를 구가한 국가대표팀과 자국 리그의 전통적인 인기가 오늘날에도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뜨거운 인기를 자랑하는 이란 축구계에서도 유달리 남다른 명성을 자랑하는 '이벤트'가 있다. 바로 테헤란 더비다.

 

테헤란 더비가 열리고 있는 아자디 스타디움의 모습, @Ultras Tifo
테헤란 더비에서 활약 중인 양 팀의 선수들, @Football Tribe

 테헤란 더비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연고지로 하며 아자디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공유하는 페르세폴리스와 에스테그랄, 두 팀 사이의 경기를 부르는 말인데, 두 팀 사이의 라이벌리와 갈등이 워낙 치열해 이란,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경기가 벌어지는 날 서로에 대한 모욕과 분쟁은 기본이고, 폭력 사태와 기물 파손 또한 종종 일어나곤 한다. 경기 때마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팬들의 분노가 엄한 심판을 향하는 경우가 많아 심판도 외국인 심판을 들여와 경기를 진행한다고 하니, 두 팀 간 사이가 얼마나 안좋은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번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페르세폴리스와 맞붙게 된 울산을 에스테그랄 팬들이 응원하는 것 역시 이 같은 극심한 라이벌리의 일종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언제부터 이 같은 치열한 라이벌리가 형성되어 온 것일까.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두 팀 사이의 갈등은 이란 축구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Shahin FC, @Wikiwand / Ali Abdo, @Wikipedia

ㅣ테헤란 더비. 그 치열한 혈전의 역사적 근원에 대하여

 페르세폴리스가 역사를 계승한, 1942년 창단된 샤힌 FC는 창단 초기부터 외부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재능 있는 선수들을 바탕으로 뛰어난 성적을 구가 했던 그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1967년 해산되고 만다. 당시 팔레비 왕조를 상징하는 타지 FC라는 명칭으로 리그에 참가했던, 지배 계층 팬들을 위시한 에스테그랄과의 경쟁구도가 그들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던 탓인지, 언론과 이란 축구 연맹까지 나서서 샤힌의 해체를 주도했다. 이때 해체된 샤힌의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졌는데, 1963년 권투 선수 출신의 알리 압도가 창단한 페르세폴리스가 이들을 영입해 서서히 강팀의 대열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약팀이었던 페르세폴리스가 지배계층의 탄압으로 해체된 샤힌의 선수들을 영입해 이들의 의지를 이은 이 시점부터 두 팀 사이의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샤힌 선수들을 흡수한 이후 페르세폴리스가 에스테그랄(당시 타지 FC)의 아성을 위협하기 시작하며 두 팀의 경쟁의식은 더욱 심해졌다. 안그래도 과거가 있던 사이인데, 우승 트로피를 두고 다투기 시작하니 그 치열함이 더 심화된 것이다. 물론 경쟁 초반에는 이미 강팀의 입지를 공고히 했던 에스테그랄이 연속 우승을 차지했지만, 이후 이란 국가대표팀을 지탱했던 호마윤 베자디, 사파르 이란팍, 호세인 칼라니 트리오가 각각 11골, 11골, 8골을 집어넣으며 위용을 과시한 페르세폴리스가 1971년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두 팀이 동등한 관계에 올라서게 된다. 그 뒤로 페르세폴리스와 에스테그랄이 서로 엎치락 뒤치락 우승을 주고 받으면서(이따금 다른 팀의 차지가 되기도 했지만) 라이벌 관계가 더욱 깊어져갔다.

 

이란 혁명, @Brookings Institution

 페르세폴리스와 에스테그랄이 모두 우승을 2번 연속으로 놓친 뒤 맞이한 1979년에는 축구계 뿐만 아니라 이란 사회 전체를 뒤흔든 이란 혁명이 벌어지면서 리그가 중단된다. 팔레비 왕조의 통치에 이란 시민들이 반발하여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이후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지도자 호메이니의 집권으로 이란의 체제는 완전히 뒤바뀐다. 보수적 성향의 정통 이슬람주의자인 호메이니는 축구를 싫어했다. 사실, 모든 스포츠를 다 싫어했다. 이 시기 이란의 스포츠란 스포츠는 죄다 지원이 끊기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데, 이란 혁명의 여파도 있긴 했지만 이런 이유로 이란 프로 축구 리그 또한 1989년부터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란 혁명 직후 이따금씩 열린 몇몇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것은 페르세폴리스였지만, 리그 재개 이전까지 페르세폴리스는 숱한 고난을 겪어야 했다. 이란 혁명 시기 많은 선수들이 팀을 떠났고, 클럽이 보유한 재산 또한 정부 기관과 이란 협회에 강제로 귀속됐다. 1981년에는 클럽의 이름 마저 강제로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선수들은 항의의 의미로 경기를 보이콧하기도 했다. 1986년 결국 억압 속에 이란 군인 재단에게 인수되고 클럽의 명칭이 변경되기에 이르렀지만, 다시 한번 선수들이 나서 저항했고, 군인 재단이 인수를 포기하면서 이들은 클럽을 지켜낼 수 있었다.

 

 에스테그랄의 경우에는 이란 혁명을 거치면서도 별 다른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팔레비 왕가의 지원을 받았던 클럽이었지만 이슬람 정부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이후에도 특별히 탄압을 받지는 않았고, 오히려 전폭적인 지원 속에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AFC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 같이 페르세폴리스와 대비되게 정부 측의 지원을 등에 업고 성공기를 구가하던 에스테그랄의 당시 역사를 보면, 그들과는 달리 외부적 압력에 시달려야 했던 페르세폴리스 팬들이 반감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랫 동안 이어진 테헤란의 두 팀 사이 갈등은 이렇게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 더 심화되어 왔다. 억압의 역사를 거치며 단결해 온 페르세폴리스와 비교적 굴곡 없는 길을 걸어온 에스테그랄. 어느 쪽이 특별히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경쟁 과정에서 팬들이 부딪히는데 충분히 영향을 줄만한 역사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한편으로는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클럽과 지배 계급을 대표하는 클럽이라는 두 팀의 이미지가 라이벌 관계 형성을 심화시키기도 했다. 단순히 클럽 역사에서 이어져 왔던 서로 다른 양상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창단 초기부터 두 팀은 뚜렷하게 구분되는 팬층을 보유하고 있었다. 교사와 학생들이 설립한 샤힌 FC의 역사를 이으며,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창단된 페르세폴리스는 서민과 노동자 계층의 팬들이, 군 장교와 정부 산하 스포츠 기구 직원 등이 설립하여 부유한 이들의 후원을 받았던 에스테그랄은 일종의 '부르주아'라고 칭할 만한 상류층과 지배 계층의 팬들이 팬 집단을 이루었다. 이러한 팬 성향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지금과 같은 앙숙 관계를 만드는데 일조한 측면 또한 적지 않다.

 

 이뿐만 아니라 이슬람 원리주의자이자 보수적 종교 성향을 지닌 에스테그랄 팬들과 개혁주의, 진보적 종교 성향의 페르세폴리스 팬들은 종교적 입장에서도 갈등을 빚는다. 정통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의 전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를 잇는 이란의 실질적 수장 하메네이 역시 보수적 입장의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는데, 이와 관련해 페르세폴리스 팬들은 반 하메네이, 에스테그랄 팬들은 친 하메네이 성향을 보이곤 한다. 종교적 갈등과 더불어 현 정부에 대한 입장과 관련된 차이 또한 이들의 라이벌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테헤란&nbsp;더비를 즐기는 팬들, @Teheran Times

ㅣ마치며

 이같은 양상을 볼 때 서민, 노동자 계층의 의지로 만들어져, 정부의 탄압을 견디고 저항해온 페르세폴리스와 부유층, 지배층의 팬들을 기반으로 성공기를 구가했던 에스테그랄은 종교, 문화, 정치적 영역에서조차 으르렁거리는 사이인 만큼 어찌 보면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란 사회 내부의 문제로 자리 잡은 이같은 여러 방면에서의 갈등이, 이란을 대표하는 두 팀들이 벌이는 치열한 각축전의 명성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것이 한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어찌됐든 이런 이유로 테헤란 더비가 뜨거운 열기를 자랑하는 아시아 최고의 더비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한 경기장을 공유하는 AC 밀란과 인테르의 밀라노 더비, 노동자 계층과 상류층을 각각 대변하는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라테의 엘 수페르클라시코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라이벌 간의 더비가 지닌 요소를 다양하게 포함하고 있는 테헤란 더비. 경기의 수준을 떠나 그 열기만큼은 어쩌면 그들과 비슷하거나 혹은 더 뜨거울지도 모른다. 더불어 최근 페르세폴리스와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오른 울산 현대를 에스테그랄 팬들이 격렬하게 응원하면서 이들의 라이벌 관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인데, 상기한 배경을 알고 간다면 이 같은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아시아 축구를 즐기는데 있어 흥미를 한층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난데없이 테헤란 더비에 참여하게 된 울산 현대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바람과 동시에, 결승전 이후 벌어질 SNS상의 '장외 테헤란 더비'의 반응을 기대하면서 글을 마친다.

 

 

 

(글 : 이중협/logan07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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